김좌진

두한.jpg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가 몸 바쳐 살아온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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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696.jpg 강자 주의보!
적어도 한 종류 이상의 막강한 힘을 가진 이가 보입니다.
는 이 강자를 이길 수 없으므로 그냥 협상하거나 자비를 베풉시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김좌진, 아들을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오늘은 이 애비와 함께 폭☆4하자꾸나.”

김좌진, 폭탄을 들면서

“함께 폭☆4하자.”

김두한, 그걸 또 수긍하며

김좌진 장군은 두하니의 아버지이자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위대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들판에서 좆썬민쭈쭈릐린민공화국 꽁싼땅 간부에게 총을 맞고 죽었다. 호는 백야(白冶).

생애편집

백야 김좌진은 1889년 폭탄을 들고 태어났다.

날이 갈 수록 폭☆4에 재능을 보이던 그는 주위 어른들에게 폭☆4를 하려면 적어도 적과, 그러니까 왜놈과 같이 죽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또 자신의 조국이 왜놈들에게 침략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해 독립군 사령관이 되기로 결심하고, 1905년에 대한 뎨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폭☆4를 배우게 된다. 협상하는 법은 여기서 배웠는데, 그의 유명한 말인 "그쯤은 돼야지!"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이러한 그 특유의 자폭심과 협상 능력은 그의 아들 두하니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만 두하니와의 차이점은 대사로, 아버지 김좌진은 "그쯤은 돼야지!"지만 우리 두하니는 "4딸라!"이다. 왜 바뀌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두하니가 자기 아버지를 싫어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허나,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위기에 처하거나 쳐맞아 쓰러져 있을 때, 갑자기 김두한의 회상 속에서 김좌진이 "두한아, 일어서라, 어서 일어서! 상대는 공산당이다, 애비를 죽인 공산당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김좌진이 쓰러지며 김두한에 빙의하는 듯한 장면이 존재한다. 즉, 김두한은 김좌진을 좋은 파워 공급원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1920년에는 북로 군정서군을 이끌고 청산가리 대첩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이 때의 왜놈들은 우리 백야 장군님의 전술에 놀라도 너무 놀란 나머지 바지에 오줌을 질질 지리며 간도까지 가서 정신승리를 하기 위해 간도 참변을 일으킨다. 노무새끼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30년의 奀썬 꽁싼당 간부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사실 이는 심영이 미래에 자신이 고자가 될 것을 알고 미리 화근인 김좌진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라 카는데 알 게 뭐야.

장례편집

한족총연합회에서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장례에 참석한 듕귁 사람들은 대고려제국 황제께서 돌아가셨다며 통곡하기 바빴다.

도보시오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