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카타 토시조

히지카타 토시조의 1868년부터 2007년까지의 사진.

히지카타 토시조(왜말: 土方歳三, 1835년 5월 31일 ~ 2061년 1월 16일)는 왜국 도쿠가와 막부 말기 때 양이 세력을 뒤엎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 신센구미의 부장이다. 1869년 6월 20일에 홋카이도 담진(왜말: 胆振) 지청의 함관(왜말: 函館)에 있는 오릉곽(왜말: 五稜郭)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가, 돌연 1960년 6월 7일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때부터 아라키 토시유키(왜말: 荒木利之)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살기 시작하였다.

참고로 별명은 노가다 토시조라고 한다.

유년기편집

본적은 무장국 다마군 돌마을(왜말: 武蔵野国多摩郡石田村, 현재의 동경소비에트임시정부 일야시 석전)이며, 농사꾼의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로 이웃 마을에 사는 곤도 이사미와 어릴 적부터 친구먹기를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덫을 놓거나 가짜 듕귁집을 차리는 등 많은 장난을 치고 다녔다.

청년기편집

곤도 이사미와 잘 놀다가, 곤도가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을 보았다고 하면서 '자네도 같이 양이 세력을 없애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일행이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자신도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에 홀려서 훗날 귀신 부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홋카이도에서편집

곤도가 죽고 난 뒤 신센구미 잔당들을 이끌고 홋카이도의 담진 지청에 있는 함관으로 도망쳤는데, 그곳에서 아이누인들한테 집단으로 다구리를 당했다.

1896년부터 1960년 사이에편집

히지카타의 친척들의 말에 따르면 달러 멘디를 만나러 인도에 갔다거나, 캐나다칸나다어와 하키를 배우러 갔다거나, 이란에서 사기꾼들한테 당하다 이라크에서 살아 나왔다고 하지만 분명치 않다.

1960년 이후편집

1960년 6월 7일에 다시 왜국으로 돌아가 보니, 히지카타의 친척들은 어느 새 그를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 때부터 이름을 바꾸고 나서 지금까지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집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알바로 이용해서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알바생 이름을 아라키 히로히코(왜말: 荒木飛呂彦)라고 지었는지는 알 게 뭐야.

그 알바생이 그린 만화가 훗날 의 기묘한 모험으로, 수많은 죠죠교 신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일생의 업적들편집

석전 가루약편집

그는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석전 가루약'(왜말: 石田散薬)을 만들어 팔았다. 어릴 적 돈을 벌기 위해서 무언가를 생각한 히지카타는 강둑에 있는 고마리라는 풀을 갖다가 으깨고 지지고 구워서 발라 보니, 삔 데에 효과가 있는 것을 알고는 주변에 살고 있는 애들과 함께 플랜테이션 사업을 시작한 것이 석전 가루약의 시초라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이 약을 발라보고 부작용이 생기자, 고마리가 있는 곳에 가 보니 석면이 묻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의 입에 석면 가루약라고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에 대해 히지카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ㅽ, 내가 그 따위 사업을 하지 말았을걸!  

노가다편집

히지카타 토시조의 성씨는 사람들한테 널리 알려졌는데, 19세기 말에는 아직도 왜국에 문맹이 많이 산재해 있었으므로(대개 쪽바리들이 그러함), 오늘날의 덕후 총리 아소 다로처럼 한자를 제대로 못 읽는 현상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히지카타의 한자 토방(土方)을 '도카타'라고 읽었고, 그 말이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오늘날의 노가다라는 어원이 되었다.

그런데편집

2004년에 왜국방송수신료징수공사(흔히들 NHK라고 부름)에서 방영하는 사극 '신센구미!'에서 야마모토 코지(왜말: 山本耕史)라는 자가 히지카타 토시조 역할을 맡았는데, 모습이 꼭 그를 닮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기도 하였다.

도보시오편집